google-site-verification=jW7NsY2oDQJXEux3Zq34pPuN9LT7_guvB1ckn7Kpqyk 화성 용주사 유래와 보물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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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용주사 유래와 보물 알아보기

by 럭셔리플러스 2024. 11. 6.

화성 용주사의 유래와 보유하고 있는 국보급 보물 알아보자

전에 많이 방문했을땐 관심 없이 지나쳤던 것들이 오랜만에 오늘 다시 보니 새롭게 보인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사천왕문, 카페, 효행박물관 등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1. 용주사 위치, 주차, 입장시간, 종파

*위치 :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 136(송산동)    tel. 031-234-0040

*주차장은 넓진 않지만 무료주차이다.

*대중교통은 병점역 후문에서 35-1(B), 50번, 50-3, 46번, 34-1, 34번 버스이용, 약 11분~15분 걸림

*입장료는 무료이고, 입장시간은 저녁 8시경까지 라고 한다.

*종파 : 대한불교 조계종

찾아가는 길

 

2. 용주사의 유래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16년에 갈양사로 창건된 이름 높은 도량( 도량이란, 질병을 낫게 하거나 가뭄 등의 천재지변이 없도록 하고, 수명을 연장하게 하며 번영을 이룩하고 도둑이나 외적을 굴복시키기 위한 갖가지 불교 주술을 조직적으로 의식화한 것)이었다 한다. 산이맑고 아름다워 "국가 만대의 복된 터전"이라고 하여 고려왕인 광종도 절을 대거 수리하도록 명하여 수륙도량이라 칭하고 수륙재( 수륙재란,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배고파 괴로워하는 아귀(餓鬼)를 달래며 위로하기 위하여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의식)가 이곳 용주사에서 봉행되었다고 한다.

그 후 고려 때 잦은 병란으로 소실된 빈터에 조선 제22대 정조대왕께서 아버지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1790년에 절을 새로 지었다 한다.

대웅보전 낙성식 전날밤 정조대왕의 꿈에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라 하였다 한다.

사대천왕문-홍살문 설명문

 

3. 홍살문 

사천왕문을 지나면서 재잘대던 아이들은 용주사의 고즈넉함과 경건한 분위기에 자연스레 숙연해졌다.

그리고 다른 사찰에서는 볼수없는 홍살문을 보고는 "어? 이거 융건릉에도 있었는데?" 하며 마치 홍살문을 잘 안다는 듯 눈빛을 반짝였다.

그렇다. 용주사는 융건릉에 모셔진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능침사찰이라는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홍살문은 붉은 칠을 한 두 개의 기둥을 세워 두 기둥을 연결하는 보에 붉은 살을 박은 형태로 가운데 태극문양이 새겨져 있어 경의를 표하고, 붉은색으로는 잡귀를 막는다는 의미를 지닌 문이다.

정조대왕이 아버지(사도세자) 생전에 괴롭혀던 원혼들을 김히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용주사에 홍살문이 있었던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3. 부모은중경탑,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보물 1754호)

또 바로 왼쪽으로는, 정조대왕이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님의 크고 높은 은혜를 설명 듣고 크게 감동하여 아버지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1970년에 용주사를 새로 짖게 된 계기가 된 "부모은중경"탑이 있고 이를 목판, 동판, 석판에 새겨놓은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이 효행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효행박물관 입장은 무료이며, 실내는 촬영금지이다. 아쉬운데로 용주사 안내서의 사진을 활용해 본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입장하면,  실내 우측에 목판등 탁본을 체험할 수 있는 유료 코너도 있었다.

차례대로 왼쪽은 효행박물관, 부모은중경탑,불설대부보은중경판(안내서 발췌)

 

4. 삼문

다른 사찰에는 볼 수 없는 궁궐 건축양식이다.

좌우에 7칸의 행랑을 지닌 맞배지붕 양식으로 동서의 옆문과 중앙의 대문이 각각 문이 나 있어 삼문이라 부른다.

기둥에 각각 "용주사불"로 시작되는 주련이 걸려있다.

 

5. 세존사리탑

이탑은 천보루 가기전에 정면에 세워진 전형적인 5층석탑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1702년에 성정스님이 부처님의 진신사리 2 과를 사리병에 담아 이 석탑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6. 불음각

삼문을 통과하니 천보루 왼쪽에 커다란 범종하나가 걸려있는데 색감과 문양들이 세련된 것이 한눈에 봐도 오래되지 않은 범종임을 알 수 있다.

이 범종은 1985년에 만들었다는데 소리가 영롱하기를 국보 제120호인 범종과 비교해볼때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한다.

불음각/삼문

 

7. 천보루(1983 9월 19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36호 지정)

전면에는 하늘이 보호하는 곳이라는 천보루(왕권을 상징하는 이름) 현판이 걸렸으며, 후면에는 백성을 구제한다는 홍제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천보루(華城 龍珠寺 天保樓)는 궁궐의 문과 행각처럼 지은듯하며, 옆면 5칸, 옆면 3칸, 지붕은 옆면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짜 맞춘 익고 양식이다.

좌우에 있는 요사채보다 앞쪽으로 나와 있으며, 2층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좌우 요사채 앞의 계단을 통해야 한다.

정면에서 보면 요사채 건물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 대웅보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천보루 아래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저 분홍빛의 '1080배 현수막'이 어째 내눈엔 거슬린다ㅠㅠㅠ  저 소중한 천보루 누각 정면을 가려버리니까  좀 아쉬운 생각이든다.

 

8. 대웅보전과(보물 제1942호), 삼세여래후불탱화(2017년 8월 14일, 보물 제1942호로 지정)

천보루 아래 돌기둥 사이를 통과하면 정면으로 위엄 있게 세워진 대웅보전은 풍수 지리학적으로 가장 좋은 위치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법당보다 절을 올리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우리도 왠지 절을 올려야 할 것 같은 군중심리에 휩싸일 정도였다.

대웅보전의1970년 창건당시 지어진 정면 3칸, 측면 3칸의 구조이며, 입구 지붕에는 왕의 상징인 용머리형상 있고 계단을 바치는 옆 난간 댓돌이 궁에서 사용하는 문양을 하고 있어, 이 또한 조선후기 왕가 능침사찰이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특히 내부에는,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조선중기 최고의 화가였던 단원 김홍도의 작품으로 알려진 귀중한 세불후불탱화가 있다.

세불후불탱화는 그 시대 최초로 명암을 점목시켜 입체적인 느낌으로 그려졌다 한다.

대웅보전 법당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라서 아쉬운 대로 또 안내서 사진을 사용해 본다.

대웅보전,탱화(용주사 안내서 발췌)

9. 범종(국보 제120호)

용주사 범종은 대웅보전 좌측에 자리하고 있으며, 신라의 종 양식을 보이는 고려초기의 동종이다. 종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좋게 하는 융통이 있고 용뉴(고리역할)는 여의주를 물고 마치 하늘로 힘차게 승천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종의 몸통 상부에는 구슬인지 염주인지 테두리 같은 게 드리워졌고 반원에 꽃과 넓은 띠를 두르고 있다.

하부엔 둥근 모양으로 돌출돼있고 그 안에는 연꽃 모양이 남아있지만 훼손된 건지 세월이 흘러서 마모된 건지 어쨌든 흔적 명확하지 않다.

 

10. 호성전

용주사 가람 안내도에 대웅보전(8번) 우측에(우청룡 좌백호? 개인적인 생각) 자리하고 있는 호성전(11번)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 씨, 정조대왕과 효의왕후의 위패( 위패는 죽은 사람의 성명이나 법명(法名)을 기록해 제사 지내는 직사각형의 나무패이다. )를 모신곳이다. 

호성전은 1950년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가 1988년 복원된 단층짜리 목조건물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2020년 8월 20일 화재로 인해 또 전소된다.

다행히 좌측에 있던 국보 대웅보전은 보전하였다 한다.

용주사 안내도/호성전

 

11. 용주사 유래와 보물 알아보기를 마치며

소싯적부터 용주사를 수시로 드나들었지만 나는 왜 한 번도 정조대왕과 용주사가 이렇게 깊은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학창 시절 소풍 갔을 때 선생님 께서라도 알려주셨으면 좋았으련만, 이제야 능침사찰이었다 걸 알다니 ㅠㅠㅠ 알려주셨는데 나만 졸았나 보네 ㅠㅠ  나만 그런겨ㅠㅠㅠ

주차장 넓고 요금내고 관람하던 용주사 예전모습을 자꾸 비교하면서 뭔가 아쉬움이 밀려왔다.

용주사도 시대에 맞게 변화했건만 50여 년 전 용주사를 자꾸 떠올리며 세월의 덧없음을 또 한 번 더 실감한다.

알고 나니, 용주사 곳곳에 사도세자 살아생전 못다 한 정조대왕의 효심이 얼마나 간절하고 절절했는지 가슴이 다 먹먹해 온다.

나야말로, 항상 내가슴을 시리게하는, 일찍 돌아가신 내 어머니가 오늘따라 몹시도 그리워진다.

끝.